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파리골목길 탐방기 (마레지구, 몽마르트르, 라탱지구)

by traveler2025 2025. 3. 24.
반응형

파리를 처음 찾았을 땐 에펠탑과 루브르 박물관 같은 유명한 장소들이 여행의 중심이었지만, 이번 여행에서는 조금 다르게 걷고 싶었다. 사람들 틈에서 벗어나 도시의 ‘결’을 느낄 수 있는 골목길들을 따라 파리를 천천히 걸었다. 특히 마레지구, 몽마르트르, 라탱지구는 그 각자의 색과 이야기를 지닌 동네로, 파리를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어 주었다. 이 세 골목의 감성과 풍경, 그리고 그 안에서 만난 순간들을 글로 풀어본다.

 

파리 몽마르트 골목 이미지

마레지구: 역사의 흔적 위를 걷다

마레지구는 파리의 역사적인 심장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세 시대의 거리 구조가 그대로 살아 있는 이 동네는, 한 발 한 발 내디딜 때마다 과거와 마주하게 된다. 좁고 구불구불한 길은 마치 시간의 틈새 같았고, 벽돌과 석조로 이루어진 건물들은 조용한 위엄을 품고 있었다. 무엇보다 이 동네는 '조용한 고급스러움'이 느껴지는 곳이다.

어느 아침, 카페테라스에 앉아 에스프레소를 마시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았다. 이곳 사람들은 분주하지 않다. 책을 읽거나 친구와 담소를 나누는 모습이 어쩐지 정갈해 보였다. 잠시 후 좁은 골목을 따라 걷다 보니, 작은 갤러리와 서점들이 하나 둘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중 한 곳에선 젊은 예술가의 작품이 전시 중이었는데,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한 색감이 마레지구의 분위기와 닮아 있었다.

오후에는 유명한 팔레 루아얄(Palais Royal) 근처에서 열린 플리마켓에 들렀다. 오래된 책, 수공예 향수병, 낡은 우표들까지 마치 시간이 멈춘 듯한 물건들이 즐비했다. 발길을 돌려도 골목 어귀에서 갑작스럽게 나타나는 골동품 상점이나 감성적인 레스토랑은 나를 계속 걷게 만들었다. 마레는 그렇게, 조용히 여행자의 마음에 스며든다.

몽마르트르: 예술과 낭만이 흐르는 언덕

파리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골목길을 찾는다면, 단연 몽마르트르다. 언덕을 따라 오르는 길은 마치 한 편의 시처럼 이어지고, 그 위엔 파리를 내려다보는 사크레쾨르 대성당이 있다. 하지만 진짜 매력은 성당이 아니라 그 아래를 흐르는 골목들에 있었다.

길마다 아티스트들이 스케치북을 펼쳐 그림을 그리고, 그 옆에선 바이올린 선율이 잔잔하게 울린다. 그 풍경은 과장 없이 ‘파리답다’는 말이 절로 나온다. 내가 찾은 카페 ‘라 메종 로즈(La Maison Rose)’는 분홍빛 외벽과 담쟁이넝쿨로 유명한 곳인데, 골목 어귀에 홀로 자리한 모습이 마치 영화 세트장 같았다.

그날 저녁엔 운 좋게도, 어느 골목 모퉁이에서 열린 소규모 재즈 공연을 만났다. 나무 의자 몇 개를 둘러놓고 진행된 공연이었지만, 분위기는 그 어떤 콘서트보다도 진했다. 곁에선 동네 주민들이 와인잔을 기울이고 있었고, 하늘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그 순간은 지금도 선명히 기억난다. 몽마르트르는 누군가에게는 너무 익숙한 관광지일 수 있지만, 나에겐 파리의 낭만을 가장 직접적으로 느낄 수 있었던 장소였다.

라탱지구: 젊음과 지성, 그리고 자유

라탱지구는 파리의 지적 에너지가 살아 있는 곳이다. 소르본 대학을 중심으로 펼쳐진 이 동네는, 역사적인 건축물과 자유로운 분위기가 묘하게 어우러진다. 다른 동네들이 감성이라면, 이곳은 살아 있는 생각과 대화가 중심이다. 걷다 보면 벽에 붙은 시 구절이나 철학자의 문구가 시선을 끈다. 거리의 서점들은 오래된 가죽 표지의 책들과 젊은 작가들의 에세이가 나란히 놓여 있고, 카페에는 언제나 무언가를 쓰고 있는 사람들이 앉아 있다.

내가 가장 오래 머문 곳은 '셰익스피어 앤 컴퍼니(Shakespeare & Company)'라는 서점이었다. 좁은 계단을 오르자 책으로 가득 찬 작은 방이 나왔고, 창문 틈으론 센 강이 내려다보였다. 책을 펼치고 한 시간 정도를 조용히 앉아 있었는데, 문득 이 도시가 참 너그럽다고 느꼈다. 여행자가 조용히 머물 공간을 허락해 주는 도시. 파리는 그런 곳이었다.

거리에는 거리공연과 행위예술, 그리고 거리낭독회 같은 프로그램도 흔히 열렸다. 자연스럽게 참여하거나, 옆에서 듣기만 해도 좋다. 자유롭고 열려 있는 이 분위기가 라탱지구의 진짜 매력이다. 라탱지구를 걷는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관광 중'이라는 느낌을 받지 않았다. 그냥 파리의 일상 속 한 장면을 자연스럽게 공유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마레지구, 몽마르트르, 라탱지구. 이 세 곳의 골목을 걸으며 느낀 것은 파리는 단순한 ‘여행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살아 있는 공간이라는 사실이다. 각기 다른 결을 지닌 이 골목들은 나에게 다양한 얼굴의 파리를 보여주었고, 무엇보다도 '걷는다'는 행위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들었다.

유명한 관광지를 찍고 지나가는 여행이 아닌, 그 안에 머무르며 삶의 조각들을 발견해가는 여행. 파리의 골목길은 그런 여행자에게 가장 아름다운 무대가 되어준다.

반응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