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차여행의 진정한 매력은 소도시에 있다. 북적이는 대도시 대신, 조용한 골목과 여유로운 풍경을 따라 천천히 걷는 시간은 여행의 본질에 더 가까운 감동을 안겨준다. 이번 글에서는 이탈리아의 세 소도시, 치비타 디 반뇨레조, 오르비에토, 루카를 비교하며 각각의 분위기와 기차 접근성, 현지 감성을 소개한다. 같은 기차, 비슷한 거리지만 도시마다 전혀 다른 색을 가진 이 여행지들은 ‘소도시 기차여행’의 의미를 되새기게 만든다.
치비타 디 반뇨레조: 고립된 감성, 시간 밖의 마을
라치오(Lazio) 주 북부, 깊은 협곡 위에 떠 있는 치비타 디 반뇨레조(Civita di Bagnoregio)는 마치 시간 속에 고립된 듯한 풍경을 보여준다. “죽어가는 도시”라 불리는 이 마을은, 지반 침식으로 인해 외부와 단 하나의 보행자용 다리로만 연결되어 있다.
기차는 직접 들어가지 않지만, 인근 도시 오르비에토(Orvieto)까지 Trenitalia 열차로 이동한 후, 현지 버스를 타고 약 30분이면 치비타 입구에 도착할 수 있다. 오히려 이런 간접 루트가 이 마을을 더 신비롭고 특별하게 만든다.
입장료를 지불하고 다리를 건너 들어선 마을은, 중세의 시간이 멈춘 듯하다. 돌담과 덩굴, 아기자기한 돌길과 손으로 그린 간판들, 그리고 주민 몇 명만이 살아가는 고요한 거리. 상점도 많지 않고, 카페도 단출하지만, 바로 그 소박함이 이 도시의 정체성이 된다. 관광객들이 속삭이듯 걷고, 사진보다 눈에 담는 것을 더 소중히 여기는 풍경이 자연스럽다.
여행 분위기 요약
- 접근성: 기차 + 버스 (약간 번거롭지만 가능)
- 감성: 고요하고, 아날로그적이며 명상적인 분위기
- 추천 여행자: 혼자 걷기를 좋아하는 여행자, 감성 기록을 남기고 싶은 사람
오르비에토: 언덕 위에서 내려다보는 예술적 정취
움브리아(Umbria) 지역의 오르비에토는, 중세와 르네상스가 공존하는 절벽 위의 성곽 도시다. 치비타와 가까운 위치에 있지만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기차역에서 푸니쿨라(산악열차)를 타고 언덕 위 구시가지로 올라가는 과정부터 여행이 시작된다.
도시에 도착하면 첫눈에 보이는 것은 화려한 오르비에토 두오모(Duomo)다. 고딕 양식의 정교한 입면과 황금빛 모자이크는 건축 예술의 절정을 보여준다. 그 앞의 광장은 넓고 여유롭고, 거리 곳곳에는 갤러리, 골동품 가게, 로컬 와인바들이 조화롭게 섞여 있다.
오르비에토는 소도시이지만 상업적이거나 인위적인 느낌이 적다. 특히 오후가 되면 골목길은 한적해지고, 돌계단 위로 햇살이 쏟아지는 풍경이 그 자체로 그림이 된다. 와인과 트러플, 지역 특산 요리가 풍성해 미식 여행지로도 제격이며, 기차역과 구시가지의 연결도 잘 되어 있어 하루 일정으로도 편안하게 둘러볼 수 있다.
여행 분위기 요약
- 접근성: 기차역 + 푸니쿨라로 바로 접근 가능
- 감성: 예술적, 여유롭고 클래식한 소도시 정취
- 추천 여행자: 첫 유럽 소도시 여행자, 미식과 건축을 좋아하는 사람
루카(Lucca): 성벽 안에 살아 숨 쉬는 일상
토스카나(Toscana) 지역의 루카는 여행자의 속도를 자연스럽게 늦추는 도시다. 피렌체에서 기차로 1시간 20분 정도면 도착하며, 역에서 구시가지까지는 도보로 단 몇 분이면 충분하다.
가장 인상적인 특징은 도시 전체를 둘러싸고 있는 ‘성벽(Mura)’이다. 이 성벽은 자전거나 산책길로 개방되어 있어, 여행자와 현지인이 함께 어울리는 루카만의 풍경을 만든다. 성벽 위를 걷다 보면 나무가 터널을 이루고, 곳곳에 벤치와 전망대가 있어 하루 종일 산책해도 지루하지 않다.
루카는 여전히 ‘사람이 사는 도시’다. 관광지가 아닌 골목에도 아이들이 뛰놀고, 학교 앞에는 피자집이 북적이며, 오후 4시쯤엔 카페에 앉아 독서를 하는 노부부가 있다. 작고 낮은 건물, 세련되지 않지만 따뜻한 건축, 그리고 꾸며지지 않은 일상이 여행자를 편안하게 감싸준다.
작은 음악회나 거리 악사도 자주 만나게 되는데, 루카는 오페라 작곡가 푸치니의 고향으로 음악이 도시 전반에 녹아 있다. 단순한 도시 풍경 속에 오래 머무를수록 더 많은 감동을 선물하는 곳이 바로 루카다.
여행 분위기 요약
- 접근성: 기차역과 구시가지 접근성 매우 우수
- 감성: 일상적, 따뜻하고 지역적인 삶의 향기
- 추천 여행자: 장기여행자, 가족 여행, 도보여행 애호가
결론: 소도시는 분위기로 기억된다
치비타, 오르비에토, 루카. 모두 이탈리아의 소도시이지만, 각기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다. 어떤 곳은 고립된 명상 공간 같고, 어떤 곳은 예술적 풍요로움을 안겨주며, 또 어떤 곳은 소박한 삶의 현장을 그대로 보여준다.
기차는 이 도시들을 천천히, 그러나 안정적으로 이어준다. 기차를 타고 이동하는 시간 동안, 여행자는 도시가 지닌 공기를 미리 상상하고, 마음을 준비할 수 있다. 소도시 기차여행의 진짜 매력은 풍경이나 유적이 아니라, 각 도시가 가진 고유한 리듬을 느끼는 일이다.
당신이 원하는 여행의 리듬은 어떤 모습인가? 그 질문에 대한 답은, 치비타의 돌길을 걷거나, 오르비에토의 와인을 마시거나, 루카의 성벽 위를 걷는 순간 비로소 들려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