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스본은 언덕 위에 세워진 도시다. 그렇기에 걷는 여행자에게는 더없이 매력적이다. 구불구불한 골목, 돌계단, 노란 트램, 미라두로(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붉은 지붕. 그 어떤 교통수단보다, 리스본은 도보로 천천히 걸을 때 가장 아름답다. 이번 글은 걷기를 좋아하는 여행자를 위한, 리스본 하루 산책 루트를 중심으로 언덕, 트램, 전망대의 감성을 담아 소개한다.
아침: 바이샤에서 시작해 알파마로
리스본 여행의 시작은 도심의 중심, 바이샤(Baixa)에서 출발한다. 이곳은 리스본에서 가장 평지에 가까운 지역으로, 기하학적으로 정돈된 거리와 고전적인 건축물, 조용한 카페들이 모여 있다. 아침 일찍 카페에서 갈라웅(포르투갈식 라떼) 한 잔과 파스텔 드 나타를 먹고, 광장으로 나가면 햇살이 도시 전체를 깨운다.
바이샤에서 도보로 천천히 알파마(Alfama) 지구로 올라가는 길. 리스본 특유의 파도 타일로 장식된 인도와 골목길, 담장 위의 식물들, 그리고 어디선가 들리는 파두 음악 소리. 걷는 여행자라면 이 모든 감각을 놓치지 않고 온몸으로 느끼게 된다.
알파마는 리스본에서 가장 오래된 동네이자, 가장 느린 속도로 살아가는 지역이다. 오르막이 힘들긴 해도, 그 길 끝에 있는 미라도우루 다 그라사(Miradouro da Graça)나 미라도우루 다 세뇨라 두 몬테(Miradouro da Senhora do Monte)에 도착하면, 붉은 지붕과 태주강이 어우러진 리스본 시내 전경이 감동처럼 펼쳐진다.
점심부터 오후: 트램과 언덕 계단 사이의 도시
정오 즈음, 한창 햇살이 강해질 시간에는 알파마에서 트램 28번을 타보자. 물론 이 글의 주제는 도보 여행이지만, 리스본에서 트램은 단순한 교통 수단이 아니라 풍경을 즐기는 ‘이동형 전망대’ 같은 존재다. 노란 트램은 좁은 골목과 언덕을 따라 덜컹거리며 움직이고, 창밖으로 보이는 집들과 주민들, 가게 간판 하나하나가 여행자의 시선을 끈다.
트램을 타고 바이로 알투(Bairro Alto) 방향으로 이동한 뒤, 다시 도보 여행을 재개한다. 바이로 알투는 낮과 밤의 얼굴이 전혀 다른 곳. 낮에는 조용한 주택가 같은 느낌이지만, 곳곳에 매력적인 서점, 빈티지 숍, 카페가 숨어 있다. 이 동네는 리스본의 ‘힙’한 감성을 고스란히 품고 있다.
이 근방에서 점심 식사를 하는 것도 좋다. 소박한 현지 식당에서 그릴드 생선, 포르투갈식 오징어 요리, 혹은 비프 스튜 등을 먹으면 걷느라 지친 몸도 자연스럽게 회복된다.
식사 후에는 산타 카타리나 전망대(Miradouro de Santa Catarina)나 상 페드로 데 알칸타라 전망대(Miradouro de São Pedro de Alcântara)에서 리스본의 언덕진 도시 구조를 감상해 보자. 계속 걷고, 계속 올라가야 만날 수 있는 풍경이기에 더 감동적인 순간이 기다리고 있다.
저녁: 골목과 계단, 마지막까지 리스본을 걷다
오후 늦게는 카이스 두 소드레(Cais do Sodré) 방향으로 천천히 내려오자. 계단을 따라 내려가는 길마다, 골목마다 또 다른 리스본의 표정이 숨어 있다. 어느 벽에는 알록달록한 그래피티가, 어느 창가에는 꽃이 가득한 화분이. 사진을 찍지 않아도 기억에 남는 장면들이다.
카이스 두 소드레 역 근처에 도착하면 해질 무렵이 된다. 이곳에는 타임아웃 마켓(Time Out Market)이라는 대형 푸드코트가 있어 다양한 포르투갈 요리를 한 번에 맛볼 수 있다. 카운터에 앉아 와인 한 잔, 문어 샐러드와 함께 하루의 여운을 즐기기에 딱 좋은 곳이다.
식사 후에는 강변 산책도 추천한다. 태주강 옆에 마련된 산책로를 따라 걷다 보면, 해가 지고 도시의 불빛이 하나둘 켜지는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이때의 리스본은 또 다른 감성을 품고 있다. 하루 종일 걸은 발걸음은 무겁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가볍다.
결론: 리스본은 걷는 사람에게 진심인 도시다
리스본은 교통편보다 두 다리에 더 잘 어울리는 도시다. 언덕이 많고, 계단이 많지만, 걷는 여정 하나하나가 풍경이 되고, 이야기가 된다. 이 도시의 리듬은 빠르지 않고, 걸음에 맞춰 흐르며, 여행자를 반긴다.
걷기를 좋아하는 당신이라면, 리스본은 더없이 잘 맞는 도시일 것이다. 지도에 표시된 목적지를 향하지 않아도, 그냥 걷는 그 길 위에서 리스본은 가장 아름답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