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에서 남부는 종종 북부나 중부에 비해 덜 주목받는다. 그러나 진짜 이탈리아의 뿌리를 경험하고 싶다면, 남부야말로 가장 감동적인 여정이 될 수 있다. 특히 풀리아와 바실리카타는 전통이 살아 있고, 사람들의 삶의 온도가 느껴지는 곳이다. 이번 글에서는 기차로 여행 가능한 이탈리아 남부의 핵심 소도시들, 그 중에서도 풀리아, 바실리카타, 알베로벨로를 중심으로, 느림과 따뜻함이 있는 여행을 소개한다.
바리(Bari): 남부 이탈리아 기차여행의 중심 허브
풀리아(Puglia) 주의 주도이자, 남부 기차여행의 출발점인 바리는 단순한 환승지가 아니라 그 자체로 매력적인 도시다. 로마나 나폴리에서 고속열차(Frecciarossa 또는 Intercity)를 이용하면 바리까지 편안하게 이동할 수 있으며, 이곳을 중심으로 남부의 다양한 소도시로 연결되는 지역 열차들이 다수 운행된다.
바리의 매력은 오래된 것과 새로운 것이 자연스럽게 공존하는 데 있다. 바리 중앙역에서 도보 15분 거리에 위치한 구시가지 ‘바리 베키아(Bari Vecchia)’는 미로처럼 얽힌 골목길과 하얀 석조 건물이 인상적인 지역이다. 이곳에서 손으로 파스타를 빚는 할머니들과 마주치는 건 흔한 풍경이다. 특히 이곳의 특산 파스타 ‘오레키에테(Orecchiette)’를 만드는 장면은 바리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경험이다.
바리의 해안 산책로는 아침 산책이나 일몰 감상에 제격이다. 현지인들은 일상을 즐기듯 조깅을 하고, 커플은 바닷가 벤치에 앉아 바다를 바라본다. 바리는 단순한 교통 중심지를 넘어서, 남부만의 여유와 리듬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도시다. 이곳에서의 1박은 이후 소도시 여행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줄 워밍업 같은 여정이 된다.
마테라(Matera): 동굴도시에서 만나는 원시적 감성
바실리카타(Basilicata) 주의 대표 도시 마테라는 남부 이탈리아 기차여행의 진정한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동굴도시 ‘사씨 디 마테라(Sassi di Matera)’는 이탈리아에서 가장 오래된 거주지 중 하나로, 수천 년간 이어져온 인간 거주의 흔적을 고스란히 담고 있다.
바리에서 마테라까지는 직행기차는 없지만, Ferrovie Appulo Lucane(FAL)이라는 지역 열차를 이용하면 약 1시간 30분 내에 이동이 가능하다. 이 여정은 단순한 이동 수단이 아니라, 남부의 소박한 시골 풍경과 언덕, 포도밭, 올리브 나무가 이어지는 슬로우 트레인이기도 하다.
마테라의 매력은 그 독특한 풍경에 있다. 돌로 깎아 만든 집과 교회, 좁은 계단 골목, 촘촘히 이어진 동굴 건축물들은 마치 영화 세트장을 걷는 듯한 느낌을 준다. 실제로 많은 영화들이 이곳에서 촬영되었으며, 제임스 본드 시리즈 <노 타임 투 다이> 역시 마테라에서 인상적인 오프닝 장면을 찍었다.
마테라에서는 동굴 호텔에서 하룻밤을 보내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벽과 천장이 모두 석회암으로 된 이색적인 숙소는, 흔한 관광지에서는 느낄 수 없는 원시적인 감성과 묵직한 정서를 전해준다. 고요한 새벽, 안개 속의 마테라를 바라보는 순간, 여행자는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감동을 경험하게 된다.
알베로벨로(Alberobello): 동화 속 풍경을 담은 하얀 지붕의 마을
알베로벨로는 풀리아의 작은 마을이지만, 이탈리아 전역을 통틀어 가장 독특한 건축양식을 자랑한다. 마치 동화책 속에서 튀어나온 듯한 원뿔형 지붕의 ‘트룰리(Trulli)’ 건물들이 모여 있는 이곳은 1996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고, 지금도 많은 여행자들에게 잊지 못할 첫인상을 남긴다.
바리에서 알베로벨로까지는 Trenitalia 또는 Sud Est 철도를 이용해 환승을 포함해 약 1시간 30분이 소요된다. 작은 기차역에서 내려 몇 분만 걸으면 트룰리 마을이 펼쳐진다. 돌을 겹겹이 쌓아 만든 건축 방식은 단순하지만 정교하고, 그 위에 올려진 흰색 벽과 회색 지붕은 햇살 아래서 더욱 빛난다.
알베로벨로는 그 자체로 하나의 거대한 야외 박물관 같다. 하지만 관광지임에도 불구하고 마을은 매우 조용하고, 지역 주민들은 여전히 그곳에서 일상생활을 이어간다. 기념품 가게와 트룰리 카페들도 상업적이기보다는 지역 분위기를 해치지 않도록 절제된 모습이다.
이곳에선 하루 일정을 추천한다. 마을을 천천히 걷고, 사진을 찍고, 현지 와인을 한 잔 마시며 여유를 즐기기에 충분하다. 저녁이 되면 관광객이 빠져나가고 마을은 더욱 조용해지는데, 그 순간 진짜 알베로벨로의 정취가 시작된다. 석양에 물든 트룰리의 실루엣은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남는다.
결론: 남부 기차여행은 느림과 온기를 닮았다
이탈리아 남부의 기차여행은 화려하진 않지만 깊다. 북부의 세련된 도시들과는 또 다른, 사람 냄새 나고 풍경이 살아 숨 쉬는 여정이다. 바리, 마테라, 알베로벨로는 각각의 색을 지닌 도시지만, 공통적으로 ‘천천히, 따뜻하게’ 다가온다. 기차의 속도는 빠르지 않지만, 그만큼 더 많은 것을 눈에 담고, 마음에 새길 수 있다.
이번 여행에서는 북적이는 도시 대신, 조용한 남부의 마을과 골목길을 선택해보자. 차창 밖으로 펼쳐지는 남부의 햇살, 돌담 너머의 포도밭, 그리고 길모퉁이에서 만난 동네 어르신의 인사 한마디가, 당신의 여행을 더 오래 기억되게 만들 것이다.